공원에서 쉬다 1 (Taking a Rest at a Park 1)

나는 본다 들여다볼 수 없이 깊은 연못을, 노파들이 오래 된 도시의 주름 속에서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광경을…… 살아 있는 건 무채색의 어둠뿐이라는 듯이 끔찍하게 늙은 검은 얼굴들을 보았다 죽은 나무와 밑동에 돋아나는 버섯과 잎 끝에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린 물방울의, 그 휘황한 불꽃의 주인인 그녀들을……

그녀들은 어떻게 알고 서로 모이는가 그들끼리 있을 때만은 왜 쉴새없이 입이 벌어지는가 어둠에 긁힌 듯한 웃음 소리를 자랑스레 내는가 테가 닳은 억양이 서로를 감싸주는 친밀한 분위기 때문인가 낡은 벤치들 눈을 굴리며 거들먹거리는 비둘기의 전리품들 깊은 칼집과 사라진 밀어들 어떤 밤의 흔적도 남지 않은 구멍이 사라진 악기들……

그런데 왜 저들은 나에게 매혹적인가 어스름을 빨아들여 털 하나하나가 광휘를 뿜어내는 저녁의 고양이를 만난 것 같은가

나는 이 도시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던가 향로인 양 주둥이를 내미는 꽃과 상스러운 허리를 뒤트는 몸짓과 교만한 눈빛, 천박한 체위를 강요하는 들끓는 욕망과 왼손으로 써내려간 문장처럼 떠 있는 구름과 말없이 사라지는 불꽃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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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Now I Will Talk of Extinction)

어둠을 겹쳐 입고 날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가지 속에 웅크리고 있던 물방울이 흘러나와 더 자라지 않는,
고목나무 살갗에 여기저기 추억의 옹이를 만들어내는 시간
서로의 체온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하며
잎들이 무섭게 살아 있었다

천변의 소똥 냄새 맡으며 순한 눈빛이 떠도는 개가
어슬렁 어슬렁 낮아지는 저녁해에 나를 넣고
키 큰 옥수수밭 쪽으로 사라져간다
퇴근하는 한 떼의 방위병이 부르는 군가 소리에 맞춰
피멍울진 기억들을 잎으로 내민 사람을 닮은 풀들
낮게 어스름에 잠겨갈 때,

손자를 업고 나온 천변의 노인이 달걀 껍질을 벗기어
먹여주는 갈퀴 같은 손끝이 두꺼운 마음을 조금씩 희고
부드러운 속살로 바꿔준다 저녁 공기에 익숙해질 때,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은 서로가 내뿜는 숨결로
호흡을 나누는 일 나는 기다려본다

이제 사물의 말꼬리가 자꾸만 흐려져간다
이 세계는 잠깐 저음의 음계로 떠는 사물들로 가득 찬다
저녁의 희디흰 손가락들이 연주하는 강물로
미세한 추억을 나르는 모래들은 이 밤에 사구를 하나 만들 것이다

지붕에 널어 말린 생선들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고,
熔岩처럼 흘러다니는 꿈들
점점 깊어지는 하늘의 상처 속에서 터져나온다
흉터로 굳은 자리, 새로운 별빛이 태어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허름한 가슴의 세간살이를 꺼내어 이제 저문 강물에 다 떠나보내련다
순한 개가 나의 육신을 남겨놓고 눈 속에 넣고 간
나를, 수천만 개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담고 있는
멀리 키 큰 옥수수밭이 서서히 눈꺼풀을 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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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생각 (Too Late Thought)

꽃의 색과 향기와 새들의
목도
가장 배고픈 순간에 트인다는 것
밥벌이라는 것

허공에 번지기 시작한
색과
향기와 새소리를 들이켜다 보면
견딜 수 없이 배고파지는 것
영혼의
숟가락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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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변상련의 (Of Sympathy)

거주 만료된 몸을 나와
저세상으로
가던 길목에서 문득 희로애락을 끌고
평생 수고해준
제 몸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진 영혼처럼
그녀

차를 돌려 살던 집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숟가락 소리 웃음소리 서류와 옷
가구와 상처와 추억이
집을
빠져나가니 싸늘히 식어버렸구나!

무릎을 꿇고 함께 견딘 시간들을 주물렀다

인고호흡까지 시켰다 입을 달싹거리며
알은체하자 그녀

노잣돈 건네듯 움트는 동녘 햇살을 혀끝으로
떼어 덮어주었다
설익은 밥

높고 외롭고 쓸쓸한 정신을
흉내만 낸
나의 밥을
오랜 세월 맛있게 먹어준
집에게
큰절하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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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 (A Decisive Moment)

일찍이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법이나 빗줄기에 소리를 내는 법, 그리고 가을 햇빛에 아름답게 물드는 법에 대해 배워왔다 하지만 이파리의 일생이 어떻게 완성되는가는 낙법에 달려 있다 어디에 떨어지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잎이 아닌 것은 아니다 바람에 불려 다니는 것처럼 보여도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수십 마일 이상 날아가 고요히 내려앉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러려면 우선 바람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바람이 몸을 들어올리는 순간 바람의 용적과 회전속도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팔랑팔랑 허공을 떠돌다 강물 위에 내려앉는 낙엽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마지막 한마디를 위해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한 방울의 비가 물위에 희미한 파문을 일으키거나 별똥별이 하늘에 성호를 긋고 사라지는 것도 다르지 않다 죽음이 입을 열어 하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순간이 중요하다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와 빛이 절묘하게 만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듯이 결정적 순간이라는 게 있다 잎맥을 따라 흐르던 물기가 한 꼭짓점에서 일제히 끊어지는 순간,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제 발목을 내리쳐야 한다 그러면 짧으면서도 아주 긴 순간 한 생애가 눈앞을 스쳐갈 것이다 벌써 절반이 넘는 이파리들이 나무를 떠났다 그들은 떨어진 게 아니라 날아간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처럼 보여도 이파리에게는 오직 한 순간이 주어질 뿐이다 허공에 묘비명을 쓰며 날아오르는 한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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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관한 기억 (Memories of a Wood)

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오기는 왔던가?
마른 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빗물 고인 웅덩이처럼?
젖은 나비 날개처럼?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꽃그늘에서 입을 맞추었던가?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더 붉어졌던가?
그때 너는 들었는지?
수천 마리 벌들이 일제히 날개 터는 소리를?
그 황홀한 소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은 소음이라고?
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정말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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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First)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그건 내가 모르지.
  당신의 잠든 얼굴 속에서 슬며시 스며 나오는 당신의 첫.
  당신이 여기 올 때 거기에서 가져온 것.
  나는 당신의 첫을 끊어버리고 싶어.
  나는 당신의 얼굴, 그 속의 무엇을 질투하지?
  무엇이 무엇인데?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당신을 만든 당신 어머니의 첫 젖 같은 것.
  그런 성분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첫.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 속에 숨어 있는데, 당신의 손목은 이제 컴퓨터 자판의 벌판 위로 기차를 띄우고 첫, 첫, 첫, 첫, 기차의 칸칸을 더듬는다. 당신의 첫.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옛날 당신 몸속으로 뿜어지던 엄마 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 몸이 되던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 속으로 기러기 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의 첫은 살며시 웃고 있을까? 사진 속에서 더 열심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까? 엄마 뱃속에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가던 당신의 무서운 첫 고독이여. 그 고독을 나누어 먹던 첫사랑이여.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들어 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개, 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
  오늘 밤 처음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서
  나는 첫을 잃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 손 잡고 뽀뽀라도?
  그렇게 말할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의 첫은 끝, 꽃, 꺼억.
  죽었다, 주 긋 다. 주깄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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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코라 (Seoul, Kora*)

山이 컹컹 짖다가
 山이 나를 따라온다
 
  山이 새끼를 낳는다
  山이 산을 핧는다
  山이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다
  山이 매정하게 새끼들을 다 버린다
  어린 山들이 백주 대낮에 교미한다, 악취가 난다
  山이 미로 속의 개떼처럼 몰려다닌다
 
  山이 젖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목덜미를 쓰다듬자 몸을 부르르 떤다
  목덜미에 줄이 묶인 山이 끌려간다
  山이 철창 속에 갇힌다. 맞는다. 걷어채인다. 죽는다
 
  山이 똥을 먹는다, 시신을 먹는다
  山이, 욕창 가득한 山이 눈에 불을 켜고 달겨든다
  山이, 머리에 흰 눈을 얹은 山이 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山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목놓아 운다
  山이 山을 물어뜯고 싸운다
  山이, 큰 山이 제 꼬리를 물고 빙빙 돈다
 
  몰려다니는 山을 제국의 군대가 박멸한다
  살아남은 山이, 山이, 山이 山을 넘어 달아난다
  아직도 달아난다
 
山이, 山을 벗어버리고 싶은 山이, 두 손을 모으고, 모은 두 손을 저 먼 山을 향해 뻗치더니 이마에 대고, 가슴으로 끌어내리고, 다시 한 번 저 먼 山을 바라보고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인 다음, 오른쪽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바닥에 대더니, 왼쪽 무릎을 마저 꿇고, 모은 두 손을 땅바닥에 붙여 힘껏 멀리 밀어 보낸 다음, 온 몸을 땅에 밀착시킨다. 그리고 운다. 이것을 세 걸음에 한 번씩 계속 반복하면서, 山이 山을 돈다.

註) 코라*: 오체투지로 성산을 한 바퀴 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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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A Table)

우리는 문제를 열고
대화에 푹 빠진다
사랑에도 빠지고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어디라도 좋다 각자의 입장에서
우리들의 의견은 모인다
반경 1km 이내

거기 있다고 생각되는
당신의 상상은
깊이깊이 다른 건물을 쌓아 올린다

사이좋게 평행선을 만든다
우리 관계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서로의 인력에 끌린다

지하 깊은 곳에서
비밀이 고갈되는 순간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손가락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폭넓은 의견과 차이를 교환한다
당신의 말은 여기까지
내가 생각하는 건물의 높이는
저기까지

수위를 조절해가며
푹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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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자 (Let’s Write a Novel)

너무 긴 소설을 쓰지 말 것. 너무 짧은 소설도 쓰지 말 것. 적당하게 지루해질 때 끝나는 소설일 것. 원고지의 분량이 아니라 심리적인 분량일 것. 어느 공간에서 읽어도 적당히 심심하고 적당히 어리둥절한 반전일 것.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충실하지 않는 이야기일 것. 어떤 대답도 흘려 들을 수 있는 내면일 것. 그런 주인공을 찾을 것. 캐스팅은 길거리에서 오디션은 실내에서 시상식은 레드카펫을 밟는 장면에서 중단할 것. 더 많은 말이 필요하면 다른 영화를 찍을 것. 더 많은 상이 필요하면 영화를 찍지 말 것. 돌아와서 시를 쓸 것. 전혀 시적이지 않는 소설을 쓸 것.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상관없는 중요한 문장이 들어갈 것. 단어는 조금 더 동원되거나 외로워질 것. 저 혼자 있어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마침표일 것. 다른 부호는 적당히 경멸하고 적당히 술을 마신 후 같이 잘 것. 좋았니? 좋았어! 이런 대화에 식상해하는 커플이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를 섭외할 것. 침대가 아니면 어디가 좋을까? 화장실이 아니면 어디서 바지를 내리고 치마를 들추고 속옷을 다시 껴입는지 고민하지 말 것. 사람이 장소를 만들어 간다. 장소가 사람을 대신한다. 공간은 사람 안에 들어왔다가 서서히 말라 갈 것. 물기가 다 빠진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로맨스 가이를 이해하고 두둔하고 적당히 멀리할 것. 감정의 폭이 자주 변하는 남자의 내면을 한 단어로 붙잡아 둘 것. 병원이거나 요양원이거나 아니면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일상적인 머리 모양일 것. 그들은 많은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충고를 적절히 섞어서 거절할 것. 외판원에게는 외판원에게 어울리는 약점을 만들어서 반창고에 붙여 줄 것. 쉴 새 없이 나온다면 항문에 붙여 줄 것. 기침이 심하다면 기침을 섞어 가며 장면을 바꿀 것. 더 건조한 날씨로. 더 지저분한 얼굴로 손을 씻고 나오는 결말에 가서야 나의 결벽증이 드러나는 캐릭터를 완성하고 조금 더 방치할 것. 미완성된 소설의 다음 소설을 구상할 것. 초심으로 돌아가서 길을 잃을 것. 아니면 골목길. 아니면 빙판길에서 씽씽 달리는 자전거를 기차처럼 묘사하고 정거장처럼 그리워하고 이별처럼 뻔한 동기 유발을 의심할 것. 그 전에 먼저 발표할 것. 책을 내고 출판 기념회에 온 하객들에게 왜 왔는지 모를 초청장을 발송할 것. 발송과 동시에 소설을 시작할 것. 영화의 결말도 거기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날 것. 엉성한 짜임새의 스토리를 누구보다 경멸하고 오해하는 친구의 아버지가 될 것. 그 친구의 친구와 적당히 말을 트고 화해할 것. 자연스럽게 오해하는 장면을 곁들일 것. 주먹다짐은 불필요하겠지만 오래 끌지 말 것. 너무 극적이니까 분량을 다시 생각할 것. 다음 소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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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지는 육체 (Body Becoming Transparent)

月,
장을 보러 나갔다
자르지 않은 기장미역을 사 와서 찬물에 담갔다
베란다에선 파꽃이 피었고
달팽이는 그 위에 둥글게 앉아 있었다

火,
차마 깨우지 못했다
똬리를 틀고 잠든 나의 테두리를
동그랗게 에워싸며
조용히 다가가
다시 누웠다

水,
당신은 기차를 탔다 덜컹이기 위해서
창문에 이마를 대고 매몰차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
나는 옥상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귀를 깃발처럼 높이 매달았다
여린 기차 소리가 들렸다

木,
사랑을 호명할 때 우리는 거기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뿔달린 짐승이 되어 있었다
당신의 두려움과 나의 두려움 사이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응혈처럼 만져졌다

金,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당신은
혼자 힘으로 여러 번 죽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났다
꽃들도 여러 번 피었다 졌다
당신이 서성인 발자국들이 마룻바닥에 흥건했다
무수히 겹쳐 있어 수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과도 같았다
밥냄새 꽃 냄새 빨래 냄새가
지독하게 흥건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돌아온 집도 이랬을 거야
우리는 빨래를 개며 말했다

土,
우리라는 자명한 실패를 당신은 사랑이라 호명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서서 모독이라 다시 불렀다 세상 모든 몹쓸 것들이 쓸모를 다해 다감함을 부른다 당신의 다정함은 귓바퀴를 돌다 몸 안으로 흘러들고 나는 파먹히기를 바란다고 일기에 쓴다 파먹히는 통증 따윈 없을 거라 적는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일생 동안 지었던 죄들이 책상 위에




쏟아져 내렸다

日,
우리는 주고받은 편지들을 접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양 날개에 빼곡했던 글자들이 첫눈처럼 흩날려 떨어졌다

다시 月,
당신은 장을 보러 나간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현관문 바깥쪽에 등을 기댄 채
입을 틀어막고 한잠을 울다 들어올 수도 있다
어쨌거나 파꽃은 피고
달팽이도 제 눈물로 점액질을 만들어
따갑고 둥근 파꽃의 표면을
일보 일보 가고 있다
냉장고처럼 나는 단정하게 서서
속엣것들이 환해지고 서늘해지길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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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대한 해석 (Interpretation of Solitude)

구석기 시대 활을 처음 발명한 자는
한밤중 고양이가 등을 곧추세우는 걸
유심히 보아두었을지 모른다

저 미지를 향해
척추에 꽂아둔 공포를 힘껏 쏘아올리는
직선의 힘을

가진 적이 많아서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울음이
가진 적이 없어서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것만 같은 울음에게
활을 겨누던 시간들이
흐른 후

19세기 베를린에 살던
부슈만 씨도
한참이나 관찰했으리라

기지개를 쫘악 펴고 일어난 길고양이는
일평생 척추에 심어준 상처로 성대가 트인다는 것을

버림받은 이가 버림받은 이에게
마음 여린 이가 마음 여린 이에게 내밀었던
덥썩덥썩 잡았던 손목들이
싹둑싹둑 잘려나갈 때

세상 만물이 궁수처럼 흔들림이 없고
사방 천지가 온통 과녁뿐이란 사실이
단지 참혹했을 때

그는 집에 돌아와
울음이 그칠 때까지 주름상자를 접고 접어
오로지 탄식만으로 발성하는
아코디언을 발명하게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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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식사 (A Clean Meal)

어떤 이는 눈망울이 있는 것들 차마 먹을 수 없어 채식주의자 되었다는데 내 접시 위의 풀들 깊고 말간 천 개의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기 일쑤, 이 고요한 사냥감들에도 핏물 자박거리고 꿈틀거리며 욕망하던 뒤안 있으니 내 앉은 접시나 그들 앉은 접시나 매일반.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생식을 할 때나 화식을 할 때나 육식이나 채식이나 매일반.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울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 (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둥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내 몸에 무언가 공급하기 위해 나 아닌 것의 숨을 끊을 때 머리 가죽부터 한 터럭 뿌리까지 남김없이 고맙게, 두렵게 잡숫는 법을 잃었으니 이제 참으로 두려운 것은 내 올라앉은 육중한 접시가 언제쯤 깨끗하게 비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도대체 이 무거운, 토막 난 몸을 끌고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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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 (A Flower Tree)

꽃이 지고
누운 꽃은 말이 없고

딱 한 마리 멧새가
몸을 튕겨가는 딱 그만한 천지

하늘 겹겹 분분하다
낮눈처럼 그렇게

꽃이 눕고
누운 꽃이

일생에 단 한 번
자기의 밑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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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버리다 (Leaving Him Behind)

죽은 이는 죽었으나 산 이는 또 살았으므로
불을 피운다 동짓달 한복판
잔가지는 빨리 붙어 잠깐 불타고
굵은 것은 오래 타지만 늦게 붙는다
마른 잎들은 여럿이 모여 화르르 타오르고
큰 나무는 외로이 혼자서 탄다

묵묵히 솟아오른 봉분
가슴에 박힌 못만 같아서
서성거리고 서성거리고 그러나
다만 서성거릴 뿐
불 꺼진 뒤의 새삼스런 허전함이여

용서하라
빈 호주머니만 자꾸 뒤지는 것을
차가운 땅에 그대를 혼자 묻고
그 곁에서 불을 피우고
그 곁에서 바람에 옷깃 여미고
용서하라
우리만 산을 내려가는 것을
우리만 돌아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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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Homeless)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너를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은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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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Between Heaven and Earth)

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
천지간에 어둠을 깔아 놓는 일
그걸 거두려고 이튿날의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
밤은 밤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꽉 잠가둔다
여름밤은 너무 짧아 수평선 채 잠그지 못해
두 사내가 빠져나와 한밤의 모래톱에 마주 앉았다
이봐,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어
부려놓으면 바다가 다 메워질 거야
그럴테지, 사방을 빼곡히 채운 이 어둠 좀 봐
막막해서 도무지 끝 간 데를 몰라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겹쳐
밤새도록 철석거리며 파도가 오고
그래서 茫然한 여름밤은 너무 짧다
어느새 아침 해가 솟아
두 사람을 해안선 이쪽저쪽으로 갈라 놓는다
그 경계인듯 파도가
다시 하루를 구기며 허옇게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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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와 사귀다 (Dating a Jujube Tree)

어떤 벌레가 어머니의 회로를 갉아먹었는지
깜박깜박 기억이 헛발을 디딜 때가 잦다
어머니는 지금 망각이라는 골목에 접어드신 것이니
반지수를 이어놓아도
엉뚱한 곳에서 살다 오신 듯 한생이 뒤죽박죽이다
생사의 길 예 있어도 분간할 수 없으니
문득 얕은 꿈에서 깨어난 오늘밤
내 잠도 더는 깊어지지 않겠다
이리저리 뒤척거릴수록 의식만 또렷해져
나밖에 없는 방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고
누군가 건넌방의 문을 여닫는다. 환청인가?
그러고 보면 너 어느새 부재와도 사귈 나이,

…… 그날 아무리 밀어도 밀려나지 않던 윈도우의 안개
셋이 동승한 차 안에서 한 여자의 흐느낌 섞인 노래 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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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낙지 먹기 (Eating a Live Octopus)

한 번도 죽음을 본 일이 없었기에,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죽음은 접시 위에서 살아있을 때보다 더 격렬하게 꿈지럭거렸다. 죽으면 꼼짝 않고 있어야 된다는 걸 몰랐기에, 제 힘과 독기를 모두 모아 거친 물굽이처럼 요동쳤다. 어찌나 심각하게 꿈틀거리던지, 자칫하면 죽음이 취소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죽음엔 눈과 팔다리가 달려 있지 않았기에, 방향도 없이 앞으로만 기어가다 저희들끼리 마구 엉켰다.
 
흰 접시는 마치 제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동그라미 안에서 빨판들을 물방울처럼 튀기며 거칠게 파도쳤다. 그러나 죽음이 달아나기엔 접시의 반경이 너무 짧았고, 모든 길은 오직 우스꽝스러운 꿈틀거림으로만 열려 있었다. 토막 난 다리와 빨판들은 한 마리의 통일된 죽음이기를 포기하고, 한 도막 한 도막이 독립된 삶이 되어 접시 밖으로 무작정 나가려 했고, 씹는 이빨 틈에 치석처럼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씹을 때마다 용수철처럼 경쾌하게 이빨을 튕겨내는 탄력. 꿈틀거림과 짓이겨짐 사이에 살아있는 죽음과 죽어 있는 삶이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탄력. 한 번에 다 죽지 않고 여러 번 촘촘하게 나누어진 죽음의 푹신푹신한 탄력. 다 짓이겨지고 나도 꿈틀거림의 울림이 여전히 턱관절에 남아있는 탄력. 목 없고 눈 없고 손 없는 죽음이 터무니없이 억울할수록 이빨은 더욱 쫄깃쫄깃한 탄력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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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양말 (Gray Socks)

회색 양말을 신고 나갔다가 집에 와 벗을 때 보니
색깔이 비슷한 짝짝이 양말이었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것인가.
비슷하면 무조건 똑같이 읽어버리는 눈.
작은 차이를 일일이 다 헤아려보는 것이 귀찮아
웬만한 것은 모두 하나로 묶어버리는 눈.
무차별하게 뭉뚱그려지는
숫자들 글자들 사람들 풍경들 앞에서
주름으로 웃는 눈.
웃음으로 얼버무리면 마냥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
이젠 아무래도 좋단 말인가.
빨래 바구니에 처박히자마자
저마다 다른 발모양과 색깔과 무늬와 질감을 버리고
빨랫감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양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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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餓鬼, A Starving Ghost)

길에누워자는사람들은밤에자신도모르는사이옆으로와서누워자는사람에게
병을옮긴다고한다살을닿고가만히곁에누웠을뿐인데그들은자신도모르는사이
서로병을옮기고병을받으며죽어간다그들은입을다물지못하고잔다

무당은죽어서도무덤을갖지못한다는데살아서미물이었던그들은죽으면더욱
다정을앓아야한다는데자신도모르는사이그들은언제나칼날위가아닌인간위에서
가장위태로워보인다

세장을열고손가락으로죽은새의목구멍을열어본다액에젖은벌레가기어나온다
벌레가몸에묻은어둠을핥는다그건이쪽의어둠이아니어서나는무덤을갖지못한
새들의저녁을생각한다

감자탕집에서땀을뻘뻘흘리며뼈다귀를뜯어먹는데맞은쪽에서도뼈다귀를뜯고있는사람이보인다
이안(內)은우리같군창문밖엔거지하나주머니에두손을넣고이쪽을빤히바라보고있다
이봐거기는우리바깥이라구입을다물지못하고땀을뻘뻘흘리고뼈다귀를핥고빨고뜯고있는데
먼하늘로수송기한대가좆같은굉음을내며중환자처럼실려가고있다자신도모르는사이여기는
입안의초록을모두열어놓고새의입속으로들어가잠드는, 그래 다물고 감자,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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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의 문양 (Pattern of a Knee)

저녁에 무릎, 하고
부르면 좋아진다
당신의 무릎, 나무의 무릎, 시간의 무릎
무릎은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살을 맴도는 자리 같은 것이어서
저녁에 무릎을 내려놓으면
천근의 희미한 소용돌이가 몸을 돌고 돌아온다

누군가 내 무릎 위에 잠시 누워 있다가
해골이 된 한 마리 소를 끌어안고 잠든 적도 있다
누군가의 무릎 한쪽을 잊기 위해서도
나는 저녁의 모든 무릎을 향해 눈먼 뼈처럼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다

“내가 당신에게서 무릎 하나를 얻어오는 동안 이 생은 가고 없습니다 무릎에 대해서 당신과 내가 하나의 문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내 몸에서 잊혀질 뻔한 희미함을 살 밖으로 몇 번이고 떠오르게 했다가 이제 그 무릎의 이름을 당신의 무릎 속에서 흐르는 대기로 불러야 하는 것을 압니다 요컨대 무릎이 닳아서 사랑을 하려는 새들은 서로의 몸을 침으로 적셔주며 헝겊 속에서 인간이 됩니다 무릎이 닮아서 안 된다면 이 시간과는 근친이 아닙니다”

2

그의 무릎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잊혀진 문명의 반도 같았다
구절역 계단 사이,
검은 멍으로 한 마리의 무릎이 들어와 있었다
바지를 벌리고 빠져나온 무릎은 살 속에서 솟은 섬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무릎을 안고 잠들면서
몸이 시간 위에 펼쳐놓은 공간 중 가장 섬세한 파문의 문양을
지상에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무릎으로 내려오던 그 저녁들은 당신이 무릎 속에 숨긴 마을이라는 것을 압니다 혼자 앉아 모과를 주무르듯 그 마을을 주물러주는 동안 새들은 제 눈을 찌르고 당신의 몸속 무수한 적도(赤道)들을 날아다닙니다 당신의 무릎에 물이 차오르는 동안만 들려옵니다 당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바람의 귀가 물을 흘리고 있는 소리가”

3

무릎이 멀미를 하며 말을 걸어오는 시간이 되면
사람은 시간의 관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햇빛 좋은 날
늙은 노모와 무릎을 걷어올리고 마당에 앉아 있어 본다
노모는 내 무릎을 주물러주면서
전화 좀 자주하라며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한다
그 무렵 새들은 자주 가지에 앉아 무릎을 핥고 있었다
그 무릎 속으로 가라앉은 모든 연약함에 대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음절을 답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서 나눈 무릎의 문명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생은 시간과의 혈연에 다름 아닐진대 그것은 당신이 무릎을 안고 잠들던 그 위에 내리는 눈 같은 것이 아닐는지 지금은 제 무릎 속에도 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나는 무릎의 근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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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 (My Next Life)

서운산 숲 속에 들어왔다 비로소 내 집이다
긴 숨을 내쉬었다
그늘이 그늘 위에 쌓여 있다
가지고 온
몇 줄기 취한 불빛을 놓아주었다 밤이 왔다

어느 나라에서나 자유는 늘 끝에 있었다

백 년의 허접쓰레기들도
하나 둘 놓아주었다
아침에는
빈 거미줄에 이슬들이 대롱거렸다

세상에는 타율이 너무 많았고 상상이 자꾸 줄어들었다
숲 밖의 바람 일부분이
숲 속으로 머리 숙여 들어왔다
때깔나무 잎새들이 지저귄다
돌이켜 보면
오래전부터 나는 문맹자의 자손이었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벗어날 수 없는 교착어의 문자지옥에 갇혀 버렸다s

내생에는 땅속 깊숙이
무슨 나무의 뿌리 한 가지이리라
말 없는 홀어미의 송장과
몇몇 고아의 가마니 덮인 새 송장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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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삭임 (The Whisper)

비가 오다
책상 앞에 앉다
책상이 가만히 말하다
나는 일찍이 꽃이었고 잎이었다 줄기였다
나는 사막 저쪽 오아시스까지 뻗어간
땅속의 긴 뿌리였다

책상 위의 쇠토막이 말하다
나는 달밤에 혼자 울부짖는 늑대의 목젖이었다

비가 그치다
밖으로 나간다
흠뻑 젖은 풀이 나에게 말하다
나는 일찍이 너희들의 희로애락이었다
너희들의 삶이었고 노래였다
너희들의 꿈속이었다

이제 내가 말하다
책상에게
쇠에게
흙에게
나는 일찍이 너였다 너였다 너였다
지금 나는 너이고 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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