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자 (Let’s Write a Novel)

By | 6 August 2011

너무 긴 소설을 쓰지 말 것. 너무 짧은 소설도 쓰지 말 것. 적당하게 지루해질 때 끝나는 소설일 것. 원고지의 분량이 아니라 심리적인 분량일 것. 어느 공간에서 읽어도 적당히 심심하고 적당히 어리둥절한 반전일 것.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충실하지 않는 이야기일 것. 어떤 대답도 흘려 들을 수 있는 내면일 것. 그런 주인공을 찾을 것. 캐스팅은 길거리에서 오디션은 실내에서 시상식은 레드카펫을 밟는 장면에서 중단할 것. 더 많은 말이 필요하면 다른 영화를 찍을 것. 더 많은 상이 필요하면 영화를 찍지 말 것. 돌아와서 시를 쓸 것. 전혀 시적이지 않는 소설을 쓸 것.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상관없는 중요한 문장이 들어갈 것. 단어는 조금 더 동원되거나 외로워질 것. 저 혼자 있어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마침표일 것. 다른 부호는 적당히 경멸하고 적당히 술을 마신 후 같이 잘 것. 좋았니? 좋았어! 이런 대화에 식상해하는 커플이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를 섭외할 것. 침대가 아니면 어디가 좋을까? 화장실이 아니면 어디서 바지를 내리고 치마를 들추고 속옷을 다시 껴입는지 고민하지 말 것. 사람이 장소를 만들어 간다. 장소가 사람을 대신한다. 공간은 사람 안에 들어왔다가 서서히 말라 갈 것. 물기가 다 빠진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로맨스 가이를 이해하고 두둔하고 적당히 멀리할 것. 감정의 폭이 자주 변하는 남자의 내면을 한 단어로 붙잡아 둘 것. 병원이거나 요양원이거나 아니면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일상적인 머리 모양일 것. 그들은 많은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충고를 적절히 섞어서 거절할 것. 외판원에게는 외판원에게 어울리는 약점을 만들어서 반창고에 붙여 줄 것. 쉴 새 없이 나온다면 항문에 붙여 줄 것. 기침이 심하다면 기침을 섞어 가며 장면을 바꿀 것. 더 건조한 날씨로. 더 지저분한 얼굴로 손을 씻고 나오는 결말에 가서야 나의 결벽증이 드러나는 캐릭터를 완성하고 조금 더 방치할 것. 미완성된 소설의 다음 소설을 구상할 것. 초심으로 돌아가서 길을 잃을 것. 아니면 골목길. 아니면 빙판길에서 씽씽 달리는 자전거를 기차처럼 묘사하고 정거장처럼 그리워하고 이별처럼 뻔한 동기 유발을 의심할 것. 그 전에 먼저 발표할 것. 책을 내고 출판 기념회에 온 하객들에게 왜 왔는지 모를 초청장을 발송할 것. 발송과 동시에 소설을 시작할 것. 영화의 결말도 거기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날 것. 엉성한 짜임새의 스토리를 누구보다 경멸하고 오해하는 친구의 아버지가 될 것. 그 친구의 친구와 적당히 말을 트고 화해할 것. 자연스럽게 오해하는 장면을 곁들일 것. 주먹다짐은 불필요하겠지만 오래 끌지 말 것. 너무 극적이니까 분량을 다시 생각할 것. 다음 소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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