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해지는 육체 (Body Becoming Transparent)

6 August 2011

月,
장을 보러 나갔다
자르지 않은 기장미역을 사 와서 찬물에 담갔다
베란다에선 파꽃이 피었고
달팽이는 그 위에 둥글게 앉아 있었다

火,
차마 깨우지 못했다
똬리를 틀고 잠든 나의 테두리를
동그랗게 에워싸며
조용히 다가가
다시 누웠다

水,
당신은 기차를 탔다 덜컹이기 위해서
창문에 이마를 대고 매몰차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
나는 옥상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귀를 깃발처럼 높이 매달았다
여린 기차 소리가 들렸다

木,
사랑을 호명할 때 우리는 거기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뿔달린 짐승이 되어 있었다
당신의 두려움과 나의 두려움 사이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응혈처럼 만져졌다

金,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당신은
혼자 힘으로 여러 번 죽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났다
꽃들도 여러 번 피었다 졌다
당신이 서성인 발자국들이 마룻바닥에 흥건했다
무수히 겹쳐 있어 수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과도 같았다
밥냄새 꽃 냄새 빨래 냄새가
지독하게 흥건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돌아온 집도 이랬을 거야
우리는 빨래를 개며 말했다

土,
우리라는 자명한 실패를 당신은 사랑이라 호명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서서 모독이라 다시 불렀다 세상 모든 몹쓸 것들이 쓸모를 다해 다감함을 부른다 당신의 다정함은 귓바퀴를 돌다 몸 안으로 흘러들고 나는 파먹히기를 바란다고 일기에 쓴다 파먹히는 통증 따윈 없을 거라 적는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일생 동안 지었던 죄들이 책상 위에




쏟아져 내렸다

日,
우리는 주고받은 편지들을 접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양 날개에 빼곡했던 글자들이 첫눈처럼 흩날려 떨어졌다

다시 月,
당신은 장을 보러 나간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현관문 바깥쪽에 등을 기댄 채
입을 틀어막고 한잠을 울다 들어올 수도 있다
어쨌거나 파꽃은 피고
달팽이도 제 눈물로 점액질을 만들어
따갑고 둥근 파꽃의 표면을
일보 일보 가고 있다
냉장고처럼 나는 단정하게 서서
속엣것들이 환해지고 서늘해지길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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